농사 고민하다 기술 부자 된 ‘뼈농인’… 6차 산업 길을 연다

2,425 2020.08.2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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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고민하다 기술 부자 된 ‘뼈농인’… 6차 산업 길을 연다 [농어촌이 미래다 - 그린 라이프]

제26회 세계농업기술상 영광의 수상자 10명
기술개발대상 한호균 회장
협동영농대상김영환 대표
수출농업대상 윤영식 대표
기관단체대상 부여군센터

“농사는 천하의 대본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억만년을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진리입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는 농민 교육을 위해 지은 ‘농민독본’에 이렇게 적었다. 그로부터 100년여가 지난 지금, 4차산업 혁명시대의 농업은 ‘기술’ 날개를 달고 비상 중이다. 스마트팜으로 편리하게 작물을 관리하고, 첨단 기술로 생산성을 높이며, 수확 후 가공·유통·교육·체험 등 다방면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런 농업의 변신은 세월이 지나며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많은 농업인의 피, 땀, 눈물이 있었다

 

세계일보는 1995년부터 매년 ‘세계농업기술상’을 개최해 자신만의 기술과 새로운 소득작물 개발로 더 나은 한국 농업을 만들어온 농업인들을 선정해왔다. 올해 26회를 맞은 세계농업기술상은 세계일보와 농촌진흥청이 주관하고 농림축산식품부와 비즈&스포츠월드가 후원해 지난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렸다. △기술개발 △수출영농 △협동영농 △기관단체 △지도기관 유공 공무원 등 5개 부문에서 농업인과 공무원, 단체 대표자 10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농사 잘하려다 ‘기술 부자’된 사람들

올해 수상자들을 공통적으로 수식하는 말은 ‘국내 최초’다. 이들이 개발해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은 자식 같은 농산물을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예쁘게, 많이 키울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나온 사소하지만 위대한 작품이다.

기술개발부문 대상을 거머쥔 한호균 거창군사과발전협의회장은 41년간 사과농장을 경영했다. 그는 자연재해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전국 최초 반자동 우박 가림시설을 설치했고, 잡초생장 방지장치와 농업용 시트 개폐장치를 개발해 특허출원했다. 2012년에는 농진청 기후변화 대비 시범사업을 통해 전국에 보급해 전국 사과 과원 제초시간 및 제초 노동력 절감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농사뿐 아니라 치유농업, 체험학습 등 다양한 생산활동으로 영역을 넓히며 6차산업의 본을 보인다.

기술개발부문 우수상 수상자인 유명림 로즈랑스(강원 춘천) 대표가 재배하는 것은 장미다. 그는 1997년부터 장미를 키웠고 2003년부터는 무농약 재배를 시작했다. 유 대표는 식용, 가공품 등으로 수요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장미 생산, 가공, 유통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을 개발했다. 향장미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유기농인증장미로 안전성을 인증받았다. 이어 천연장미비누 특허를 받았고, 국내 최초 장미 음료를 출시했다.

수출농업부문 우수상 수상자 추경희 소백산아래(경북 영주) 대표는 부각으로 승부를 봤다. 한국의 전통 부각을 연구해 2014년 사업장 한부각을 조성하고 국내시장뿐 아니라 2015년 스낵(튀김과자)의 본고장인 미국에 진출했다.

 

◆‘함께의 힘’으로 지속가능한 농업 제시

이번 수상자 중에는 협동조합을 설립해 함께 땀 흘리고 공을 나누며 공동의 이익 창출에 이바지한 농업인들이 눈에 띄었다.

협동영농부문 대상을 받은 김영환 대표는 충남 논산 온채영농조합법인을 운영 중이다. 그는 2002년 꽃상추 작목반을 결성해 ‘양반꽃상추’ 브랜드 명성을 전국에 알렸다. 2012년 온채영농조합법인을 조직해 묘생산 무상공급, 시험재배를 통한 새로운 품목 발굴, 현장순회지도, 유통 다변화 등을 통해 현재 24명의 조합원이 연 57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협동영농부문 우수상을 받은 주이돈 제철농부들영농조합법인(경남 의령) 대표는 ‘혼자 하기 힘들면 함께 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카카오스토리 채널을 활용했다. 채널을 통해 품앗이, 공동시설 설치, 농산물 판매, 체험농장, 온라인 판매 등을 시도하며 채널 구독자 수 1500명 이상을 확보했다.

수출농업부문 대상을 차지한 윤영식씨는 땅끝황토친환경영농조합법인(전남 해남) 대표다. 2009년 유기농전문기업으로 출범한 법인은 유기농쌀과 밀을 생산하고 가공 유통했다. 유기농쌀 수출을 목표로 삼고 2017년부터 수출쌀 생산단지를 주도적으로 조성해 수출농가를 조직했다. 윤 대표는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각종 프리미엄쌀 품종을 선발해 수출용으로 생산 중이다. 국제적인 신뢰를 높이기 위해 쌀 제품과 가공공장에 대한 중국 유기인증, 미국 USDA 인증, 할랄인증 등 국제규격 인증을 획득했다.

 

◆유관기관과 공무원의 숨은 노력

부여군농업기술센터(정대영 소장)는 기관단체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부여센터는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전국 지자체 최초로 현장지도 강화를 위한 현장기술지원팀 신설했고 스마트팜 확산을 위한 통합관제실을 설치해 앞선 농촌지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또 귀농·귀촌인, 여성 농업인과 취약계층 농업인 지원을 강화해 농촌 복지향상에 힘쓰고 있다.

특별상은 농업인들과 직접 만나며 신기술 도입·확대, 소득작물 보급, 농촌복지 향상 등에 힘쓴 농촌지도사 세 명에게 돌아갔다. 이수진 거창군농업기술센터 지도사, 이세라 해남군농업기술센터 지도사, 박고수 논산시농업기술센터 지도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 세계농업기술상 심사위원장인 최정섭 한사랑농촌문화재단 이사장(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등)은 “올해 코로나19와 장마 등 농업인들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수상자 농업인과 기관, 단체가 이러한 도전에 잘 대응하고 미래 대비까지 하는 것을 보니 든든하다”며 수상자들을 격려했다.

◆“농업, 답답한 일 많지만 설레는 일 더 많아”

 

“농업하는 사람들은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웃고 싶어도 웃지 못합니다. 정말 가슴 답답한 일이 많지요. 하지만 설레는 일이 더 많습니다.”(한호균 수상자)

 

지난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26회 세계농업기술상 수상자들은 그간의 고난을 회상하며 모든 농업인에게 귀감이 될 진정성 어린 소감을 밝혔다.

 

기술개발부문 대상을 받은 한호균씨는 평생 농업에 종사하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고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농업인들이 기술 연구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제26회 세계농업기술상 기술개발 부문 대상 수상자인 한호균 거창군사과발전협의회장이 자신의 사과 농장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 본인 제공

윤영식씨는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유기농 쌀 수출을 가능하게 만든 집념을 소개했다. 그는 “저희가 유기농업을 하겠다고 선언한 지 11년, 수출을 준비한 지 6년이 지났다”며 “9월이면 중국에 수출을 시작한다. 결실을 보게 된 것은 제 노력뿐 아니라 우리 각계 농업인들의 도움이 있었던 덕”이라고 밝혔다.

 

그는 “오늘 받은 상이 지난날에 대한 격려이며 미래에 대한 지침이라 생각하겠다”며 “더 나은 수출농업을 위해 K푸드에 쌀까지 실어 보내는 날까지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협동영농부문 대상 수상자인 김영환씨의 소감도 큰 울림을 줬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논산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그는 딸기 농사를 짓다가 상추로 품목을 바꿔 논산을 전국 최고 쌈채소 산지로 만들었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상추로 어떻게 먹고살겠냐’고 했지만 지금은 쌈채소 하면 논산이 떠오르게 했다”며 “새로운 작물을 개발하고 기술을 지도해주면 농촌이 어렵다고 한들 성공하지 못하겠냐. 열심히만 하면 최고로 살기 좋은 곳이 농촌”이라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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